어느 일제고사 해직교사의 '졸업식 하루'[펌] 사진뉴스

 


-->

쟁점법안 발의 대구ㆍ경북 의원 '누구?' 사진뉴스

허미옥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대구 MBC라디오 <여론현장>(연출 허시덕 PD/작가 : 김수진/진행 : 지동춘)은 매주 금요일 <매체비평 : 언론에는 없는 세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비평가 백병규씨와 참언론대구시민연대 허미옥 사무국장이 이 코너를 담당합니다. 중앙 및 지역 언론의 보도경향 비평으로 구성되는 <매체비평>코너 원고 전문을 참언론대구시민연대 홈페이지에도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1. 오늘 어떤 이야기?

- 지난 해 3일부터 시작된 ‘국회 파행’, 실질적으로 12월 18일부터 시작된 ‘국회 입법 전쟁’ 과 관련 지역 언론의 보도경향 정리
- 결론부터 정리하면 ‘MB악법’, ‘쟁점법안’이라는 용어는 많았지만, 정작 그 쟁점법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법안을 누가 발의했는지 등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
- 시민사회에서 나름의 기준으로 ‘MB악법’이라고 정의했던 ‘여야 쟁점법안’ 중 대구경북의원이 대표발의했던 법안을 찾아봄. (지역 언론에서 주목해야 할 몫)
- 이런 자료를 만든 이유가 있음. 이번 파업이 준 의미 중 하나는 나라의 근간을 조성할 수 있는 입법과정이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적 절차가 없었고, 언론 또한 이 법안에 대해 검증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 향후 2월 임시국회까지 쟁점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언론에서는 여론화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2. 지난 한달 여간 많은 언론들이 국회 모습을 중계하고 정치권의 반응을 전달 했을 뿐, ‘쟁점’법안이 무엇인지, 양당 간의 생각 차이 등이 분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신데요.
최근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8일 어제였죠. 몇몇 언론에서 ‘쟁접 법안’분석 및 ‘입법 발의자’ 추적을 시작

조선일보 1월 8일 A6면

- <조선일보>8일

: <쟁점법안 해부 시리즈>첫 번째 : 대기업에 은행지분 허용(4%→10%)..금산분리완화
: 정부 한나라당 “경제살리기”vs민주당에서는 “은행도 재벌줄래?”

- <조선일보>는 이 시리즈 기획의도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음
“정치권이 정부여당이 제출한 주요 법안을 놓고 20여일간 폭력사태까지 유발 극한 대결, 정작 법안내용과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없었다/향후 △ 금산분리 완화, △ 사이버폭력 및 폭력시위 관련법, △ 방송법 등 미디어관련법 쟁점법안에 대해 구체적 분석”

위클리경향 1월 13일

- <위클리경향>다음주 (13일) 출간본

: ‘MB악법’ 누가 가장 많이 발의했나?
: 참여연대에서 발표한 ‘해도 해도 너무한 MB악법 베스트 22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08 정기국회 핵심 16개 법안에 대한 민변 입장’등을 근거로 선정한 ‘MB악법 발의자’를 주요하게 보도

3. 방송 쪽은 어떻습니까?

방송은 <토론프로그램><시사프로그램>중심으로 찾아봤는데요.
- KBS <심야토론><추적 60분>, MBC <100분토론>, SBS <시사토론>등
- 에서 미디어관련법, 쟁점법안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음
: <100분토론>10월 9일 (사이버 모욕죄 필요한가?)/12월 11일 (방송체제 바꿔야 하나?)
/1월 8일 (방송법 어떻게 해야 하나?)
: 1월 6일 <2009 위기의 국회>등이 방송되었습니다.

4. 2월 임시국회 전까지 ‘쟁점 법안’에 대해 많은 언론이 집중 분석을 통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쳤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이 법안들 발의자 중에 지역 국회의원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이 자료는 어떻게 정리하셨나요?

- 앞서 말씀드렸던 것 처럼, 언론에서 거의 보도된 내용이 없기 때문에
- 시민사회단체, 변호사 단체 등에서 발표한 자료에 근거
- 언론에서 딱 한줄씩 보도하는 <쟁점법안>과 비교, 공통점을 찾았음.
- 자료 출처는 <참여연대><진보신당><진보연대(준)><오마이뉴스 기획 MB시대 악법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08 정기국회 핵심 16개 법안에 대하 민변 입장’. 등

5. 쟁점 법안과 그 법안을 발의한 지역 국회의원은 어떤 분들입니까?

-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의 본연 의무, 즉 입법 활동에 열심히 한다고 판단할 수 있고,
- 조금 더 구체적 분석, 그 활동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1>그 유명한 ‘마스크법 / 복면 금지법’ 발의한 성윤환 (경북 상주) (집시법개정안)
: 성 의원은 문방위원으로, 언론법 개정안에 동의
: ‘불법 폭력 시위를 막고, 평화시위 문화 정착’ vs 복면 착용자(마스크 착용자)가 구체적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즉 ‘명백한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금지한다는 것은 지회의 자유룰 침해


6. ‘복면 금지법’에 대해 누리꾼들은 ‘ 감기 걸려 마스크 쓰고 집회 장소에 나갔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희화화 했는데요. 또 다른 법안은요?

<2>사이버 모욕제 / 장윤석 의원 (경북 영주)

: ‘일상공간의 모욕과 달리 사이버 모욕은 그 피해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한 만큼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 vs '어떤 수위의 표현을 모욕으로 느끼느냐는 사람과 상황에 다르다. 대법원은 ’도둑놈, 죽일놈, 애꾸눈,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등을 모욕이라고 판시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부모가 그러니 자식이 그렇지‘를 더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표현은 대법원에서 모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7. 사이버공간상의 악플 문화가 개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인정하지만, 개인의 감성까지도 법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는...... 또 어떤 법이 있습니까?

<3>국정원 권한 강화를 내용으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제출한 이철우 (경북 김천)

: 국정원의 기능을 국가정책, 보완, 국가위기 상황에 관한 정보수집 확대 vs 국정원의 정치사찰을 합법화, 공안 통치와 정보정치 부활 등

<4>군필자 가산점 .. 병역법 개정안 발의 주성영 (동구갑)의원 : 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폐지된 ‘5% 가산점 제도’→‘2.5%’로 조정

자료상의 한계가 있어서 제가 조사한 것은 이정도 밖에 안될 뿐이고~
→ 이후 지역 언론이 쟁점법안과 지역출신 국회의원간의 관계를 좀 더 분명하게 해명
→ 해당 법이 제정되었을때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꼼꼼히 분석해줬으면~

8. 지역언론과 관련된 짧은 소식 전해주시죠.

<영남일보>을 포함 지역신문 4곳, 청와대 출입정지

: <한국기자협회보>보도에 따르면,
- 청와대 기자단이 12월 29일 회의를 열고 국제신문·영남일보에 4개월, 강원도민일보에 2개월, 광주매일신문에 2주간 출입정지 결정을 내렸다.
- 이유 : 12월 15일 발표된 ‘지방발전종합대책’에 엠바고(일정시점 보도유예)어겼다
- 이후 : 4개 언론사들은 청와대 기자단 중징계 방침에 재심을 요청

<매일신문>기자 2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당함

- 영주시장, 영주시의원, 영주출신 장윤석 의원이 <매일신문>기자 2명 ‘명예훼손’고소
- 영주 판타시온리조트 관련 ‘영주시 옷로비설’ 문제로 보도한 <매일신문>기사.
- 이후 과정을 지켜봐야 할 듯.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매월 1회 신문윤리강령 위반 사례 발표

- 대상 : 전국일간지, 지역 일간지 보도 및 광고
- 12월 보도
: <경북일보>가 연합뉴스 짜깁기 ‘경고’, <경북매일>사진 출처 밝히지 않아 ‘주의’
: 윤리위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표절행위로 규정

참언론대구시민연대에서 펌

"종부세 완화, 빈곤 더 부추긴다" 사진뉴스

"종부세 완화, 빈곤 더 부추긴다"


시민사회, '반빈곤행동', 빈곤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발생.."생계비 현실화하라"

◇ '反(반)빈곤행동'(2008.10.17 대구 동성로)




















'세계빈곤퇴치의 날'인 17일 오후 대구지역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대구도심을 돌며 '反(반)빈곤행동'에 나섰다.
국제연합(UN)은 매년 10월 17일을 빈곤퇴치의 날로 정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를 지원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인권운동연대를 비롯한 대구지역 12개 시민단체로 꾸려진 '反(반)빈곤네트워크'(준)은 이날 대구 동성로와 로데오거리를 걸으며 빈곤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정부에 촉구했다.

특히, 종부세 완화 방침과 공공부문 시장화를 비롯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빈곤을 가중 시킨다는 주장을 하며, 이러한 정책들의 철회를 뜻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공공요금 인상', '최저생계비 모순, '부자 세금면제' 등의 문구가 적힌 폐종이상자를 쇠사슬로 손수레에 묶어 실은 뒤, 도심을 걸으며 빈곤 문제와 그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캠페인을 마친 뒤 한일극장 앞에는 정부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쇠사슬을 풀고, 폐종이상자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 서창호씨

인권운동연대 활동가 서창호씨는 "정부는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에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의 빈곤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며 "빈곤은 개인의 문제에서 발생하는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정부는 빈곤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종부세 완화 방침를 비롯한 대한민국 1%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공무원노조 곽규운 대구지역본부장은 "고용정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면서 "빈곤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비정규직' 양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빈곤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열린 '反빈곤문화제'는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상물 상영과 문화공연으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대구대 학생들은 정부의 종부세 완화 방침을 반대하는 서명을 시민들에게 받기도 했다.

















한편, '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가 16일 발표한 적정생계비 실태조사를 보면 법정 최저생계비는 평균 가계 지출액의 절반 이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4인 가구의 경우 월 평균 지출액이 314만 1,626원인데 비해 최저생계비는 지출액의 42.2% 수준인 132만 6,609원이다. 특히, 교육비는 평균지출액이 41만 3964원인데 비해 최저생계비는 5만 6795원으로 7배 이상의 차이가 났으며, 저축 및 보험은 평균지출액이 29만 6044원인데 반해 최저생계비가 5만 2569원으로 6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4인 가족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평화뉴스에서 펌

반야월 어린이도서관 '아띠' 4일 개관..."주민들 십시일반으로 지었습니다" 사진뉴스



반야월 어린이도서관 '아띠' 4일 개관..."주민들 십시일반으로 지었습니다"



◇ 반야월 행복한 어린이 도서관에 오르는 계단의 벽면...주민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공간을 꾸몄다.(2008.10.1)





















대구 '반야월'지역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마을도서관'이 문을 연다.
오는 4일 주민에게 첫 선을 보이는 대구시 동구 신기동의 '반야월 행복한 어린이도서관 아띠'. 아띠는 '친한 친구'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어린이들이 책과 친해지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지면적 181제곱미터, 건평 109제곱미터, 장서 5천권 규모로 그야말로 동네 도서관인 아띠를 만들기 위해 반야월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다.

반야월은 안심1~4동과 신서동, 용계동을 비롯한 대구시 동구지역을 일컫는 곳으로, 인근에 K-2 전투기 비행장이 있어 소음이 끊이지 않는 등 교육문화적으로 오랫동안 방치돼 왔었다. 신암동에 공공도서관인 동부도서관이 있기는 하지만 아양교를 넘어서는 공공도서관과 문화시설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교육환경이 척박한 곳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힐 수 있을까'
반야월지역 엄마, 아빠들의 고민이 시작될 즈음, 지역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던 주민 서창환(39.남)씨는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에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를 제안했다. 마침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도 풀뿌리 주민운동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지난 해 3월, 서씨와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는 어린이 도서관을 짓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일단은 공간 확보가 급한 일이었다. 이들은 종자돈 500만원을 모아 지금의 도서관 공간을 마련한 뒤 본격적인 주민 운동에 나섰다.

◇ 김영숙 사무국장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김영숙(40.여) 사무국장은 "주거밀집지역인 반야월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부방이나 복지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책 읽을 도서관은 하나도 없어 주민들 스스로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 임대료를 마련하기 위해 한 주민은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넣었다"며 "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만든 도서관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덧붙였다.

2007년 7월~10월에는 안심1동 동사무소에서 '제1기 학부모도서관학교'를 잇따라 열어 주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마을 도서관의 필요성을 알렸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구시 '순수 민간주도형 자치마을 만들기사업'에 공모해 선정되는 기쁨도 봤다. 12월에는 도서관학교를 통해 만난 주민들과 함께 '반야월 어린이 도서관을 만드는 주민 모임'을 꾸렸다. 특히, 이 모임에는 엄마 20여명이 열성적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어 올해 4월에는 도서관 기금 마련을 위한 '책 먹는 돼지저금통'을 주민 1천여명에게 분양해 기금을 마련했고, 같은 달 30일에는 후원행사 '삼겹살 먹고 기부도 하고'를 열어 기금 650만원을 모았다. 5월부터는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최근 공사를 마쳐 개관일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 달 19일에는 대구 동구청에 지역 6번째로 마을문고 등록도 끝마쳤다.

◇ 마루바닥 공사...아빠들이 재료만 구입해 손수 했다.(사진제공.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특히, 리모델링 공사는 전기.난방시설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직접 했다. 아빠들은 재료만 구입해 마루바닥과 앉은뱅이 탁자를 만들고, 그림을 잘 그리는 엄마는 벽면에 예쁜 그림을 그려 공간을 꾸몄다. 인근의 도배학원 졸업생들은 벽면 도배를 도왔다. 아이들과 엄마들은 틈틈이 책을 기증받았다. 엄마들은 대형서점에 가 직접 좋은 책을 고르는 열성도 마다치 않았다.

김영숙 사무국장은 "초창기 모임 때 모일 장소가 없자 한 주민은 자신의 공방을 빌려줬고, 후원행사가 열린 식당의 사장님은 무료로 공간을 빌려줬다"면서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과 폐지를 팔아 모은 할아버지의 쌈지돈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개관 후 반야월 어린이 도서관은 2명의 직원을 두고 주민들이 '직영'한다. 김영숙 사무국장이 '상근'하고, 사서팀장을 맡은 주민 정재영(34.여)씨는 일주일에 3~4번 출근하는 '반상근'하기로 했다. 개관 되면 도서관 기능 말고도 주부들을 대상으로 '동화 읽는 모임', 아동들을 대상으로 미술, 천연비누 만들기를 비롯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하기로 했다.

김 국장은 "도서관이 잘 돌아가느냐, 아니냐는 운영의 문제"라면서 "마을문고를 비롯한 작은 동네 도서관의 예산이 열악한 상황이지만, 반야월 어린이 도서관이 행정기관에 작은 도서관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모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학교 도서관이 커버하지 못하는 7세 이하의 아동들이 이 작은 도서관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반야월 행복한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와 주민들을 초청한 가운데 오는 4일 개관식을 연다. 오후 1시부터 동네 떡나누기 행사가 열리고, 2시에 어린이 환영사를 시작으로 주민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개관기념 행사로, 오는 11일과 18일, 30일에는 벽화그리기, 천연비누 만들기, 영화 상영, 학부모 강좌 등이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동구지역에는 공공도서관 1개와 사립도서관 1개를 비롯해 모두 8개의 도서관이 있다. 공.사립 도서관을 빼면 모두 문고형태로 등록된 도서관이다. 동구청은 이들 문고에 대해 1년 동안 5~6백만원 정도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운영비는 지원하지 않고, 연초에 1곳을 선정해 도서 구입비 항목으로 500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김영숙 사무국장은 "뚜렷한 절차와 기준 없이 한 곳에 예산을 몰아주기 보다는 예산집행을 골고루 해야 작은 도서관들이 커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평화뉴스에서 펌

"백두산 눈보라보다 매서운 겨울인가?" 사진뉴스

"백두산 눈보라보다 매서운 겨울인가?"


[배용한의 백두산 방문기]..."광풍이 몰아쳐도 멈출수 없는 민족 통일의 행군"



◇ 평양시내 개선문 앞에서 북측 안내원에게 '개선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방북단 일행
























나는 이번이 일곱 번째 방북이고, 평양 방문은 네 번째이다.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평양근교 들판은 황금빛이었다. 기내에서 나누어준 노동신문에는 “가을걷이와 낟알 털기를 와닥닥 해제낌으로써 올해 농사를 빛나게 결속하여야 한다.”고 썼다. 가을이 이른 북녘 땅이다.

평양시내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건물마다 새롭게 칠을 했고, 거리에 사람들도 밝아보였다. 양각도호텔 로비도 붐비고 있었다. 전등불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켜고 있었다. 밤에는 건물들 방마다 불을 밝혔다. 컴컴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없다. 전등을 삼파장으로 대부분 바꾸었다. 안내 선생께 물어보니 전력 사정이 거의 회복된 단계라 했다. 수력발전소를 많이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에서 만난 안동 사람


곳곳에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중국 사람들과 동남아에서 온 것 같아 보이는 사람, 또 검은 사람, 흰 사람들이 많이 보인 것도 전과 다른 모습이다. 호텔 마당에는 자동차가 즐비하다. 시내에도 차가 많이 다녔다. 이제는 개선문 도로 복판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묘향산 다녀오는 길 가운데에서 그냥 놀 수 없다. 승용차들이 쌩쌩 달린다.

9월 23일 양각도호텔 로비에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남녘에서 아는 얼굴을 그곳에서 만난 것이다. 대구 사람도 만났다. 이들은 20일 방북한 우리겨레서로돕기운동본부 방북단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24일 공식 일정이 끝난 밤, 한 잔 하기 위해 47층 회전식사칸(남쪽 사람들은 스카이라운지라 한다)에 올라갔을 때는 안동에서 가까이 지내는 신부님들을 만났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방북단이다. 우리보다 하루먼저 와서 하루 먼저 돌아갈 이들이다. 백두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안동에서 만났다면 별로 반갑지 않을 사람이라도 평양에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것 같다. 이렇게 확 풀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호텔에서나 사적지에서나 길거리에서 북녘 사람도 만나고 남녘사람도 만나는 일이 일상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 양각도호텔에서 북쪽으로 본 평양...왼쪽 빨간 쌍둥이 건물이 고려호텔, 오른쪽 피라미드 건물이 고려호텔






















2005년, 6.15공동선언 발표 다섯 돌맞이 준비를 하며 결성된 기구가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이다. 민족공동위원회는 ‘북측위원회’, ‘남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로 구성되어있다. 남측위원회는 노동자, 농민, 교사, 학자, 여성, 언론인, 예술인, 학생, 종교인 등 부문별 본부와 전국 시도에 있는 지역본부로 구성되어있다. 그 동안에 남북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인 등이 각각 모이는 상봉모임이 있었다. 그러나 남측위원회의 지역본부가 무슨 상봉모임 같은 것을 해본적은 없다.

내 기억으로는 그 때부터 남측위원회의 지역본부에서는 북쪽의 어떤 지역과 자매결연이나 그런 걸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지역본부의 대표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측위원회나 북측위원회를 가리지 않고 ‘지역 사업’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내가 대구경북의 대표이니 당연히 우리도 북의 어떤 지역과 교류 사업 같은 것을 폼 나게 하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6.15북측위원회는 남측위원회 지역본부의 요구를 이해하는 것부터 어렵다.

지난 8월, 6.15남측위원회 지역 대표자 회의에서 ‘지역 대표 130명 정도 대규모 방북을 추진하자’는 제안에 대하여 가능하면 -성과를 걱정하지 말고- 성사되도록 추진하라고 주문하면서도 6.15남측위원회의 대규모 방북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번 방북단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실천을 위한 남측위원회지역본부 평양백두산 방문단”이다. 남쪽 정부는 애초에 6.15공동선언을 좋아하지 않는 정치집단인 것 같다. 그들은 그 선언이 있을 당시부터 못마땅해 했고, 그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가치를 깎아 내리기 위해 안달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 10.4선언을 탐탁해하지 않는 속내를 보이곤 했다.


"이깔나무 숲 속으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남녘에 사는 사람이 북녘 땅을 밟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방북 길도 한 번도 순조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 중에도 이번이 정세로 보아 가장 어려운 시기 같다. 이번 방북이 허가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찌되었든 출발일이 임박하여 방북이 결정되었다. 고려항공 180명이 탈 수 있는 비행기로 50명이 직항로를 통해서 평양으로 간 것이다. 비즈니스클래스 - 고려항공 승무원은 '업무칸'이라 했던 것 같다. 내가 비행기 넓은 자리에 앉아본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양각도호텔에 든 것이 나는 세 번째이다.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양은 여전하다. 동명왕릉, 만경대 고향집, 주체탑, 개선만,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보현사, 옥류관까지 내가 서너 번씩 가 보았던 곳이다. 길거리도 눈에 익다. 다들 반가운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26일 금요일에 백두산에 가기로 돼 있었다. 25일에는 비가 왔으나 이날은 갤 것 같았다. 평양에서 삼지연 공항까지는 한 시간 걸린다.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까지 50킬로미터 거리를 버스로 간다. 1시간 20-30분쯤 걸린다고 했다. 삼지연 공항 날씨는 맑았다. 이깔나무 숲 속을 가는데 날씨가 흐려지는가 싶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백두산 장군봉 아래 백두산 사적비 아주 가까운 곳까지 버스가 올라갈 수 있다. 좀 더 아래에서 향도봉과 장군봉 사이 안부까지 오르는 철길이 있다. 백두역, 사람들은 삭도라 했지만 쇠줄이 공중에 매달린 삭도는 아니다. 경사가 심한 산비탈에 철길이 놓여 있고, 철길에 놓인 버스만한 차를 쇠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길에 눈이 쌓이고 있어 버스가 올라갈 수 없으니 철로로 올라가려고 백두역 마당에 버스를 세우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눈보라가 심했다. 바람이 심하여 철길도 이용할 수 없어 걸어올라 가야 했다.

◇ 백두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눈보라에 시야가 가려질 정도였다.






















내 기억 속의 백두산은 자유당정권 끝 무렵 내가 초등학교에 들었던 때 외던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는 ‘우리의 맹세’ 마지막 구절의 백두산이 처음이다. 내가 사진으로라도 제대로 된 백두산 모습을 본 것이 1988년 한겨레를 통해서지 싶다. 그 시절 백두산 사진을 교실에 붙였다가 잡혀가 고초를 격은 교사도 있었다. 일본 사진작가 ‘구보타 히로지’가 찍은 사진을 본 뒤로 이제까지 뇌리에서 백두산이 떠난 적이 없었다.

꿈속의 백두산을 내가 2003년 여름 맑은 날 생시에 장군봉에 올랐었다. 작년에는 만주로 에둘러 천지 서쪽 능선을 쾌청한 날씨에 하루 종일 걸었었다. 그 모습은 지금도 눈이 시리다. 다른 사람이 찍은 백두산 사진도 많이 보았다. 언제라도 눈만 감으면 눈에 아련거리는 모습이 백두산이다. 2008년 9월 26일 눈보라가 시야를 가렸지만, 나는 향도봉, 장군봉, 천지 건너 청석봉, 백운봉, 천문봉도 본다.


백두산에서 떠오른 '고난의 행군'


남녘에서는 유난히 더운 9월이었다. 평양으로 오는 날도 가벼운 양복 안에는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었었다. 따로 준비한 옷은 등산용 외피 한 장뿐이어서 양복바지 안에 여름 등산 바지를 껴입었다. 와이셔츠 안에 티셔츠를 껴입고 여름 양복 위에 등산용 외피를 덮어 입고 있었다. 장갑은 없다.

비탈을 오르느라 그리 추운 줄은 몰랐으나 노출된 살갗은 한 겨울 추위를 느꼈다. 눈바람이 불 때는 난간을 잡고 몸을 돌려 서있어야 한다. 자칫 바람에 날려 산비탈에 쳐 박힐 것만 같다. 철길이 끝나는 곳에 향도역이 있다. 오른쪽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라는 글발이 박혀있는 향도봉이고, 왼쪽에 장군봉이 있을 것이다. 비루봉이 손에 잡힐 듯 할 것이다.

몇 걸음 앞에는 쇠사슬 난간이 있고 그 너머에 천지가 보일 것이다. “저쪽이 천지이니 그기에 서시오 사진을 찍어 드릴게요.”하고 사진을 찍으려 하였으나 그 곳에 바로 설 수도 없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자기 몸 가누기가 어렵다.

백두산사적비가 바로 보일 것이지만 눈보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바람을 등지고 몇 사람이 그 쪽으로 향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싸락눈이다. 얼굴에 맞는 눈은 모래를 뿌리는 것 같다. 몇 사람씩 팔짱을 끼고 자세를 낮추어 움직여야 했다. 사적비를 방패삼아 사진을 찍어보았으나 정신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

웬만하면 장군봉 꼭대기에 오르려 할 것이나 내가 손을 들어 “바로 저기가 장군봉입니다”하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백두역까지 내려오는 길은 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버스길을 택했다.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몸을 돌려 섰다가 좀 잦아지는 듯해야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 걷는 거리가 약간이 아니다.

9월이라 기온이 그리 낮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었지만, 가져간 물병에 물이 얼었다고 했다. 사진을 찍느라 내 놓은 손가락이 얼얼했다. 내려와 버스 안에서 손가락이 언 것 같아서 주물러주곤 했는데, 닷새가 지나서까지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은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아직 남아있다.

내가 세 번째 백두산에 올라 이번에야 그 진수를 보았노라 할 수 없을지 모르나, 백두산의 본모습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을 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감히 비교를 할 수는 없겠으나 ‘고난의 행군’이 생각났다. 1939년 1월이었을 것이다. 기온은 영하 30도에서 40도, 헐벗고, 굶주리고 적은 무리지어 쫓아오고, 항일무장독립투쟁 때의 그 ‘고난의 행군’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찌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서울에 돌아오니 나는 여름에서 갑자기 겨울로 갔다가 가을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지난 8월에 지리산을 다녀와 등산기 제목을 “빨치산 체험”이라고 붙였었다. 그러나 나는 이 방북기의 제목을 감히 ‘고난의 행군 체험’이라고 붙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항일무장투쟁의 간고함을 아직 짐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양각도호텔에서 서남쪽으로 바라본 평양시내...바로 앞 건물이 '국립영화제작소'. 그 옆은 축구경기장





















남녘 사람이 북에 가면 남녘에서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이 안 보던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림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림 한 점을 가져오고 싶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나는 북의 학생들에게는 수학을 어떻게 가르칠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 학생들의 수학 문제집 몇 권을 가져온 적이 있다. 나는 북녘 동포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남녘에는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나 맹위를 떨치고 있다.

북에서 가져와서는 안 되는 물건이 많다. 아니,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이 별로 없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2005년 많은 사람이 보고 온 ‘아리랑’공연을 보는 것도 이번에는 안 된다고 했다. 돌아올 준비를 하며 사람들은 가방을 뒤져 혹시 국가보안법 상 문제가 될 만한 물건은 없는가 살펴야 했다. 주머니도 뒤지고, 카메라도 꺼내서 스스로 검열을 해야 했다.


"눈보라 광풍이 몰아치더라도..."


돌아오는 길 평양공항에서 또 한 무리의 방북단을 만났다. 그들에게 흘러들어온 서울 소식은 또 어떤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서늘한 소식이었다. 서울에는 백두산의 눈보라보다 더 매서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말일까? 아니나 다를까 김포공항에서 짐을 찾는데 직원의 무전기에서 “지금 나오는 사람들의 그림을 검사하라”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우리 중 몇 사람의 짐은 샅샅이 뒤짐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무사히 다녀왔다. 금강산 사태이후 막혀있던 방북길이 20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방북했고, 22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방북 길에 올랐다. 지원단체가 아닌 6.15남측위원회 지역본부가 북녘을 다녀온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남측위원회 지역본부 대표가 북측위원회 대표를 만나서 이후에 정기적인 만남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6.15민족공동위원회 사업에서만 아니라 민족통일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할 수 있겠다. 강고한 정세에 민족통일 운동이 지역에서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을 둘러싼 정세가 결코 녹녹치 않다. 이 땅은 아직도 자유당정권 시절 어린 내가 외던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는 북진통일의 몽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이 날뛰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보라 광풍이 휘몰아치더라도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발걸음은 결코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 항일무장투쟁 당시 백두산 '밀영(비밀아지트)'...(왼쪽부터) 배용한. 김선우(대경진보연대 사무국장). 북측 해설사. 정우달(민주노총대구본부장)














글.사진 배용한
(6.15실천남측위 대경본부 상임대표)


평화뉴스에서 펌

1 2 3 4 5 6 7 8 9 10 다음